기도의 골방에서 일어난 치유로 새출발하며(1)

기도의 골방에서 일어난 치유로 새출발하며(1)
김현중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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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중 청년

놀기 좋아하는 아이
저는 어려서부터 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인생을 항상 놀고만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놀기에 익숙했던 부산을 떠나기 싫어서 울며 원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원주에 아는 분들도 많고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고모를 통해 처음으로 영강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고모 가족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이때부터 저희 가족은 성가대에서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교회와 가까웠기에 더 열심히 교회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테니스선수가 되다
제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운동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삼손헬스클럽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늦둥이 동생도 생겼고요. 헬스클럽은 회원도 많고 운영이 잘 되었습니다. 저희는 큰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꿈도 없이 살다가 원주로 오면서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테니스 선수로서 학교 대표 뿐 아니라 국가 대표가 되고 싶은 큰 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작은 키에 힘이 없어서 남들보다 두 배나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강원도 2위라는 놀랄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제가 테니스를 계속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처음으로 가졌던 꿈을 포기해야만 했었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지겨운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노는 것을 여전히 좋아했습니다.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며 불량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은 다했습니다.

풍지박산이 된 가정
제가 이렇게 타락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동안 저희 집에는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었습니다. IMF사태 이후로 아버지의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고 살던 집도 다 날라 갔으며 아버지는 근근히 혼자 살아가고 저는 먹고 살 길을 찾아 서울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체험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픈 마음 쓰라린 가슴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그 막막함 가운데 군 입대하라는 영장이 나왔습니다.

군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들어간 두 번째 날 수요일 저녁 예배에 교회에 갈 수 있었습니다.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 날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슬픈건지 기쁜건지 그냥 멍하니 십자가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날 교회에서 신약성서가 들어있는 조그만 성경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훈련을 받으면서 그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책을 읽기란 정말 힘들었지만 성경책을 건빵 넣는 가슴 주머니에 넣어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22년 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성경을 힘든 훈련을 받으며 1독을 하였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이 성경을 읽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골방이 생기다
두 달의 훈련을 마치고 제게 맡겨진 보직은 테니스 병이었습니다. 부대의 장군들과 테니스도 쳐주고 레슨도 하고 관리도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부대에는 테니스 병이 저 혼자였기 때문에 저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권이 많았습니다. 잠은 자대에서 잤지만 하루의 일과는 아무의 명령도 받지 않고 거의 저 혼자 지낼 수 있었습니다. 테니스장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제가 쓰는 조그만 방이고 한 방은 간부들이 오면 쉬는 방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두 방은 저의 군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아니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조그만 방은 제 기도 골방이 되었고 큰방은 제가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또 섬길 수 있는 소중한 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 자대에 가서도 이등병 때부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테니스장에 올라가면 기도 골방에서 기도하고 난 후에 큰방에서 성경을 읽고..... 정말 기도와 성경에 굶주린 사람처럼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충만한 이병 김현중은 정말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습니다. 일병도 상병도 병장도 소대장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고참들이 오늘은 교회가지 말고 운동하자고 해도 저는 단호히 교회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욕도 많이 먹고 왕따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으면 손해 보는 게 없음을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주일이나 수요일이면 당연히 제가 교회 가는 줄 알고는 시비 거는 대신에 먼저 교회 안 가냐고 물었습니다. 몇몇 고참들은 저를 따라 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전 더 열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일병이 되어서는 밤에도 기도했습니다. 제 기도방은 산 속에 있어서 밤이면 짐승 울음소리도 들리고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나서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전 그곳에서 밤마다 비가오고 천둥이 쳐도 눈이 와도 진실로 소리내어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치유의 기적이 임하고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상처들이 치유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술로도 친구로도 고치지 못한 제 마음 속의 온갖 깊은 상처들 - 아무도 알지 못하던, 마음 속 깊히 꼭꼭 숨겨져 있던 깊은 상처들이 -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주님의 손으로 말끔히 치유된 것입니다. 저는 이 때부터 제가 왜 이 땅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계속 이어져 상병이 되어서도 깨어져버린 저의 가정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고 순종하며 많은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 유혹이 와도 이겼으며 죄를 지으면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군 생활을 했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아버지
이렇게 군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께서는 전화로 미국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너무나 죄송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약없이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들어가신 후 저에게 새아버지가 생겼는데 저는 제 자신이 이때까지 믿음도 좋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역시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새아버지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용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를 용서하고 섬긴 것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후 새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분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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