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딸이 준 믿음 선물 / 정순난 집사

천국 딸이 준 믿음 선물 / 정순난 집사
2018-04-10 09:56:09
영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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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딸이 준 믿음 선물

정 순 난 집사(2교구17구역)

 

 

외로웠던 어린 시절과 결혼 생활

저는 1961년에 횡성군 갑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나셨고, 몇 년 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아처럼 이 세상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가까이에 사셔서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 큰 짐을 짊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열아홉 살에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자 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 로움 속에서 자랐던 저는 그에게서 온기와 정을 느꼈고, 나 이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교제를 시작한지 1년 만인 스 무 살에 그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원주 백운산 아랫마을 서곡에 신혼살림을 차린 우리는 남편(윤필호 성도)은 집 근처 에 땅을 구해 벼농사를 지었고, 처음에 저는 농사일을 돕다 가 나중에 도색기술을 배워서 따로 일을 했습니다. 1남 3녀 를 낳아 부요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여섯 식구가 먹고 살기 에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어릴 때 주변에 믿는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어 기독교 신 앙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일을 하느라 바빴기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도색 일은 고되기는 했지만 여자인 제게 쏠쏠한 수입이 되었습 니다. 그때 시누이였던 윤기숙 권사님으로부터 꾸준하게 전 도를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고 하십니다. 만날 때마다 자 기가 다니는 영강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이 전 혀 내키질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권유를 한귀로 흘려듣다가 2002년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영강교회에 나가서 등록을 했 습니다. 2004년 부활절에는 세례도 받았으나 신앙생활을 제 대로 하지는 못했습니다. 나가서 일만 하면 꼬박꼬박 돈이 생기니 욕심이랄까 재미랄까 그것이 더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고통

제가 세례를 받던 2004년에 큰 시련이 우리가정에 닥쳤 습니다. 큰딸 형미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병원에서 검사 를 했는데 만성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즉시 복 막투석을 시작했습니다. 스물네 살,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 울 나이에 투병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루에 4회, 단 하 루도 거르지 말고 해야 하는 복막투석은 본인도 힘들었지만 가족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딸의 고통을 멈추어 줄 유일한 방법은 신장이식이었는데 여러 검사 끝에 남편의 신장이 이식에 적합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나이가 많았고 기증 후 부작용의 위험도 있었지만 앞뒤를 따질 수 가 없었습니다. 원주기독병원에서 이식 수술을 하던 날 서 재일 목사님께서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수술은 성공 적으로 끝이 나 건강을 되찾았고 더 이상 투석을 하지 않아 도 되었습니다. 회복된 딸은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착 한 사위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참 예쁘고 대견했습 니다. 결혼 직후 딸은 새 직장을 얻은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였 는지 건강관리에 소홀해 신장이식을 받은 지 2년 만에 병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원주로 돌아온 딸은 다시 신장투석을 시작했습니다. 만성신장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딸도 그로 인해 뼈가 매우 약해졌습니 다. 2015년 어느 날, 딸은 집을 나서다가 계단에서 굴러 다 리가 골절되었습니다. 그날부터 1년 동안 꼬박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객지에서 일하는 사위를 대신해서 제가 간 병을 맡았습니다. 미친 듯이 매달렸던 일도 그만두어야 했 습니다. 음식을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주는 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제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퇴 원을 했지만 극도로 약해진 딸은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준 선물과 십자가

올해 1월 13일에 딸 형미가 쓰러졌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원 주기독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형미는 중 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2월 1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 41년의 생이 었습니다. 딸의 병이 나아서 살아난 것도 아 니고 제가 칭찬받을만한 믿음으로 살았던 것 도 아닌데 무슨 간증거리가 있나 싶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딸이 우리들에게 주 고 간 것이 작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믿음이 없던 딸은 2015년 기독병원 입원 중 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영강교회 목 사님과 원목님께서 오실 때마다 성경말씀을 들려주셨고 기 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해 성탄절에 병상에 누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장례를 치르면서 담임목사님과 교구목사님, 그리고 영강교회 성도들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큰 감동과 위 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딸이 그토록 있기를 원했던 영강교 회에서 성실히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해야겠다.’ 교회를 멀리 떠나있던 남편도 교회에 나오며 이번 부활절에는 세례 를 받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들보다 짧은, 그리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딸이었지만 그가 우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딸로 인해 식구들의 믿음 이 새롭게 되었고 신앙과는 담을 쌓았던 아들과 지금도 여 전히 우리와 함께 지내는 착한 사위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 고 있습니다. 주님 품에 안겨 안식 중인 딸은 자기가 미처 하지 못한 일들 을 우리가 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것이 형미가 우리에 게 남기고 간 선물이자 십자가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바 라보며 세상에 더 기대 었던 저희 가족이지만 이제부터는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영강교 회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 며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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