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경 집사(4교구 23구역)
행복하고 꿈 많은 출발
경기도가 고향인 나는 여고 졸업 후 같은 직장에서 남편과 결혼 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남편의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머리도 식힐 겸 부산
바닷가로 돌아오자며 떠난 것이 인연이 되어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살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순탄하고 즐거웠다. 둘이
만났을 당시 별로 넉넉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모아서 얼마 있다가 큰 아이를 낳는 날은 꿈에도 그리던 우리 아파트로 입주를 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여유자금으로 내 이름의 연립주택도 구입했다.
나이에 비해 우린 빨리 성공했다는 생각, 이대로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나이 43세, 내 나이 42세,
남편은 4~5명을 데리고 기계제작 일을 하고 나는 경리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이때 남편은 40세를 넘기며 무언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었다. 시골로 가서 버섯 농사도 짓고 전원생활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동안 워낙 일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순순히 응해 주었다.
경남에서 원주로 세 번을 왕래하고 우리는 지금의 호저면으로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파트를 팔았다. 2000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면부지의 낯선 땅 원주 사람이 되었다.
죽음의 예수 믿음 길
이곳에 와서 시집오기 전에 다니던 예수를 다시 믿고 싶었다. 그래서 가까운 마을의 교회를 정하고 다녔다. 이왕이면 새벽 기도부터 다니자며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1톤 차를 가지고 나갔다. 그러나 이 길이 큰 절망의 길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운전한지 2개월 된 나로서는 돌아오는
길에 운전 미숙으로 5m 정도의 낭떠러지로 차가 전복되고 말았다. 나도 남들처럼 은혜 받고 싶어서 나간 새벽기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정신을 잃고 죽어 있었는데 사고를 발견한 자들이 내 몸이 죽은 시체인줄 알고 구겨진 차 안에서 끄집어냈다고 한다. 정신이 들어 깨어났을
때는 기독 병원 응급실이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누워 겨우 목숨만 붙어 생사를 넘나드는 중 겨우 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약 4개월
동안 치료를 받는 중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얼마 후 확인한 몸은 하반신 마비로 평생 걸을 수 없는 신세였다. 멀쩡하게 정신이 있는 내 몸이 대소변을 못 가리는
1급 장애인이라는 진단서가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여자인 내 몸이 어찌 이 몸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며칠이고 잠을 못 자며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돈도 없는데다가 무슨 보험처리 같은 것도 하나도 안된 상태였다.
결국 조용히 생을 마치고 싶은 마음으로 굳어졌다. 나 하나 때문에 남편이 고생하고 자식들이 불행해질 것이 뻔한데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죽는 연습을 하고 죽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병실 창 너머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는데 그 마저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복도의 무슨 세제를 많이 먹어 보려 했으나 그것도 금방 위를 세척하면 고생만 더 가중될 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살아있어도 죽음을 사는 중 수술을 하고 일어나 앉기까지 꼭 40일이 걸렸다. 어떡해든 살아야 할 텐데 삶의 의욕도, 희망도, 어떤
길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비틀거리는 나, 삶의 무게를 버거워 하는 남편, 초라해진 아이들, 갑자기 벼랑 앞에선 우리 식구들이다. 내 삶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무너져 가고 있을 때 세상은 나를 조롱하고 비웃고 내가 더 빨리 무너져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 죽자. 죽는 것이 행복이다. 죽는 것이 구원이다. 죽는 그 길만이 사는 길이라는 그 생각으로 날마다 병원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죽을 방법이 없었다. 죽을 자유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예수 이름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찾아 새벽 기도를 다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누가 하나님을 믿겠느냐며 그저 소문 없이 죽여 달라고 울었다. 죽어 없어져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며 매달렸다.
이미 남편은 새벽기도 나가서 다친 나를 보고 별로 교회에 다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영원히 지상의 교회를 다니지 않고 천국에 교회에
다닐 테니 데려 가 달라며 울었다.
영강교회의 박맹제 집사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 죽음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시고 이 상황에서 사는 쪽으로 길을 열어 주셨다. 울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병실을
드나드는 어느 분이 영강교회에 다니는 박맹제 집사님을 소개해 주었다. 박집사님은 휠췌어를 타신 분이었다. 나는 그 때 겨우 휠췌어를 타고
불편과 불만과 절망으로 살고 있었는데 우선 이 분을 처음 만났을 때 나와는 정 반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으로 보였다. 무엇보다도
민첩한 휠췌어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더 놀란 사실은 고층 병원에서 바닥 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무슨 썰매를 타듯 즐거워 보였다. 더 감격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주차장의 자기 차에 가더니 옷을 갈아입듯 순식간에 휠췌어를 차안에 집어넣고 운전대에 올라 자가용차로 손 흔들며 떠나가는
장면이었다.
놀라서 손을 흔드는 둥 마는 둥 나는 깜짝 놀라며 처음으로 만나 헤어졌는데 그 분과의 이 첫 만남이 나를 살게 했다. 아니 하나님이 기도
응답으로 이분을 보내 주셔서 나를 살게 하셨다. 나는 그날 밤 부푼 꿈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 이튿날 일어나니 살 맛 살 소망이 가득했다.
나도 신나는 스키처럼 휠췌어를 타리라. 나도 신나게 손 운전으로 온 세상을 누비며 차를 타리라. 희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다시 정신 차리고 건강치 못한 몸으로 실망을 했다. 그렇지만 박집사님을 만난 이후는 그 상황이 달랐다. 시간만 되면 집사님이 믿음과
용기를 심어 주고 가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 같이 등장하셨다. 어떨 때는 못살겠다는 나를 잔인하게 책망도 하셨는데 가신 뒤에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나를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꾸중이었다. 어떨 때는 말씀을 주고 가셨는데 가신 뒤에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셨다.
그 뿐인가. 내가 어디나 누비고 달릴 수 있도록 운전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 이 천사가 나중에 퇴원해서 호저의 우리 집까지
와도 따뜻하게 방안으로 모셔 대접도 한번 못했다. 집 구조가 이분을 모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창문 너머로 만나고 헤어지곤 했다.
영강교회에서 얻는 힘
퇴원 후 주일이면 동네교회 청년들의 손에 의해 교회에 나갔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고 내가 제일 답답한 처지인 것 같았다.
다들 걸어 다니고 나만 못 걷는 신세가 되었으니 오죽 했었나 싶다. “다시 하나님 저에게 길을 열어 주세요” 하고 눈물로 기도를 했다.
담임 목사님도 나에게 많은 기도를 해 주셨다. 그러나 교회가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교통사고 후 쑥대밭이 되어버린 우리 집, 나의 운전 실수로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오히려 치료비와 자동차 수리비로 그동안 가지고 있던 돈을
많이 써야만 했다. 이제는 물질로도 끝이고 건강도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동네 교회에 들려 다니며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남의 신세를 지고
다녀야 하나 걱정하며 박맹제 집사님과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사님은 조심스럽게 경사로가 되어있는 영강 교회로 옮기자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니던 동네 교회를 정리하고 영강 교회에 다시 등록을 하였다.
처음 영강 교회를 들어서던 날 경사로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번 두 번 나오며 이상하게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내 스스로 성전과
식당을 오가며 신나게 신앙생활을 할 것만 같아 기쁨이 넘쳤다. 다치고 나서 2달에 한번 씩 미장원 다니는 것도 보통이 아닌데 교회의 브니엘
미용선교단에서 매주 미용 봉사를 해주니 정말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매주일 힘차게 전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저절로 힘이 솟구쳤다. 그리고 성가대의 찬양, 온갖 악기로 드리는 찬양, 열정적인
활동과 행사들이 나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내가 그래도 참 잘 찾아 왔구나” 싶어 소망이 넘쳤다. 아니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기까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단련시키면서 이
교회에 몸담게 하셨구나하고 생각했다. 또 한번 감사를 드렸다.
어렵게 중고차를 구입해 다시 손으로 운전 연수를 받았고 가족의 도움 없이 교회도가고 마트도 가고 나의 삶의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아서 하루에
충실하고 주일이면 아이들과 교회에 나간다.
한때 폭풍이 몰아쳤던 우리 집, 영강 교회에 출석한지 만1년이 되어 벼랑 앞에 서있던 우리는 모든 일이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안정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삶을 살아가는데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다. 일이 잘되니 하루가 바쁘다.
일꾼들 밥해주고 버섯 작업 같이하고 중 고등학생인 아이들 챙기고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삶의 때를 벗기고, 목사님 말씀 듣고 힘을 얻어온다.
비록 깨진 질 그릇 같은 몸이 되었지만 이제 다시 모든 것을 추슬러 열심히 살려한다. 중요한 것 하나는 내가 곤경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할 때 나에게 다행히 그 늪을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앞으로 삶을 살면서 가족 앞에 또한 사회에 짐이 되지 않고 힘이 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으니 앞으로 계속
그렇게 될 줄 믿는다. 나를 이렇게 가능의 삶을 살도록 도와 준 박맹제 집사님처럼 남의 천사로도 살아야겠다.
우리 영강교회가 자주 쓰는 말처럼 “남을 살리므로 살아가는 살림살이”꾼이 되어야겠다. 다시는 운전도 못할 줄 알았던 나에게 운전을 연수
해준 박맹제 집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또 감사 드린다. 그리고 나의 갑작스런 사고로 그동안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온 나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한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할렐루야! 나를 죽음 가운데서 건져 주시고 다시 살도록 기회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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