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주사랑 (2. 참)

[2003년 5월] 주사랑 (2. 참)
서재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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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Document <근심으로 주님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는 이렇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세 번 째 주님께서 물으시므로 베드로는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근심 중에는 쓸데없는 근심도 있고 쓸데 있는 근심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근심은 이방인들이,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데 하나님을 못 믿는 사람처럼 근심으로 세월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미 받은 것으로 감사하고, 받지 않아 없는 것으로 구하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 이 모든 것을 더 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마 6:33).
베드로의 근심은 쓸데 있는 근심이었습니다. 바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습니다(고후 7:10-11). 이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이 아닙니다.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그런 좋은 근심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베드로와 바울은 이런 근심 어린 삶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거룩한 근심의 삶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기도 많이 하지 못하는데 대한 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하지 못한데 대한 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욕구는 큰데 회개는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부흥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시작된 하늘나라 운동이 침체되는 것에 대한 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같이 민족이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한 "큰 근심"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롬 9:1-5).
주님으로부터 세 번 째 질문 받는 베드로는 이런 거룩한 회개의 근심을 그 순간에 가졌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이런 근심으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려 애쓰며, 변함없이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외경의 베드로 행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가 하도 무서워 로마를 버리고 떠나는데 환상 중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엉겁결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여쭈었습니다. "나는 네가 버리고 가는 로마로 간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서 십자가에 달려 죽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그는 다시 로마로 가서 장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십자가 형틀에서는 황송하게도 주님과 같은 방법은 안 된다며 거꾸로 물구나무서기의 십자가를 자청하여 주님께로 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나약하나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사랑 다짐을 받으면서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5-18)

<진실한 주님의 사랑>

우리가 왜 이렇게 근심 어린 자세로 주님을 진실로 사랑해야 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먼저 이렇게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0).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로 낮아지시고 제자들의 발 아래로 낮아지시고 무덤으로, 심지어 지옥에까지 낮아져 내려 가셨습니다.
순전히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겪어 보지만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거제도의 본 고향에 내려가서 아버지의 멸치 어장을 인수받아 멸치 잡는 어부 일을 하면 그 자체가 위대한 것인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생각에 김대중 대통령이 물러 난 후 고향 하의도에 내려가서 낚시 낚는 일을 하고 평화로이 살면 그것 자체가 위대한 것인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을 봅니다.
만약에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개헌 후 유신 시대라도 하야하여 당시의 정일형 목사 국회의원의 국회 연설대로 고향의 경북 구미에 가서 소 몰아 쟁기질을 하는 자리로 돌아갔다면 아세아의 영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권고를 하는 것 자체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은 자기가 부하에게 총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높은 곳으로 오르기만 하고 내려 올 줄을 모르는 세상인데 주님께서는 거꾸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도 이런 주님을 본받아 산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선교사들입니다. 한국의 초대 선교사들의 생애는 정말로 감동적인 생애였습니다. 이분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그 좋은 자리를 떠나 옛 우리 조상들의 가난한 시골 농촌을 누비고 살았습니다. 어느 선교사의 글을 보니 처음 와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변소나 김치 된장독이나 냄새도 거의 같아서 식별하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밤중에 말도 아닌 실례를 하는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청춘을 바쳐 낮아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치인들이나 밤낮 높아지려는 사람들에 비하면 선교사들의 생애 자체가 위대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낮아지실 뿐만 아니라 우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고 욕을 많이 먹으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요1:11)하실 뿐만 아니라 이 백성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호시탐탐 예수의 언행을 문제삼아 시비를 걸고 잡아죽이려 했습니다.
흡사 옛날 시골에서 우리 자녀들을 키우시기 위해서 우리 부모가 온갖 고생 다하고 온갖 욕을 다 듣고 사신 것과 같습니다.
드디어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백성들의 지도자의 의도대로 잡히셨습니다. 뺨 맞으시고 채찍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으로 찔리시고 벗기시고 십자가 형틀을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그 십자가 위에서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흡사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서 죽거나 죽을 고생하듯 주님은 우리를 영생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해서 이런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롬 5:8)이같이 확증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영원하신 아가페의 사랑, 이런 사랑의 구체적인 일들이 이루어진 것을 믿고 사는 우리가, 어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의 말 같이 이런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고전 16:22).
이런 주님을 변함없이 진실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큰 근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

진실한 사랑이 되지 않아서 우리의 부부가 고민해야 될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록도나 그 외의 문둥병이라는 한센씨 병에 걸렸을 경우 남편이 그 병을 앓아 격리 수용일 때는 아내가 같이 따라가서 수발을 들고 산답니다. 그러다가 병이 옮으면 같이 병자가 되어 서로 돌보고 사랑하며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이 병이 걸렸을 때 남편이 따라가서 사는 일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자 말을 잘 듣는 남자니까 "당신은 절대로 따라오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한심한 남자들이지요.
여기 한 남편의 아름다운 지조가 있습니다. 청십자 운동의 대부요 우리나라 외과 의사학회의 보물이던 고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들(서울대 의대 장가용박사)과 함께 월남을 했으나 북한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다시 가서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 줄 알아 남한에서 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재혼을 권하고 또 좋아서 존경해서 기다리는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결혼 서약을 남북 분단의 이유로 파기 할 수는 없었습니다. 후에 외국 연결을 통해서 확실히 북한에 아내가 또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더욱 이 방향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제 모두 고인이 되어서 다시는 남북 분단도 없는 저 영생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남편의 진실된 사랑,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변치 않는 사랑,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참 사랑을 우리가 계속 엮어가야 세상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됩니다.
저는 이 목회 성공이라는 말도 추한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부득이 이 말을 쓴다면 교인 수가 많고 돈이 많고 한 자리 출세하는 그런 성공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을 좋아하고 주님을 사랑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그런 성공이라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한 시골 교회를 섬기는데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후보자들을 만나 선을 보게 되었는데 언제나 상대방으로부터 거절을 당했습니다. 상대방은 목사라니까 소위 세속적인 성공의 그런 목사를 항상 찾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서울의 어느 과부 권사 중매가 들어 왔는데 약 20가지의 문의 항목을 제시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스무 고개의 내용은 자동차가 있느냐? 노후 보장이 되어 있느냐? 기본 재산이 있느냐? 등등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여기에 대해서 하나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쪽에서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도대체가 기본적인 것도 없으면서 무슨 결혼을 하려느냐 하며 따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본적인 것은 있다고 맞받아 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권사라는 자는 호기심을 갖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고함질러 대답했습니다. 그 "기본적인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며, 이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권사는 "진리가 밥 먹여 주냐" 하면서 뒤돌아서더라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이런 장로 권사 집사들이 많다면 한국교회는 한참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목사의 기본 재산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재산 제대로 갖고 사는 목사의 목회는 그 교인 수가 많건 적건 성공적인 목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예수" 뿐이었던 바울이 역사상 가장 큰 목회 성공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를 사랑하는지, 늘 가슴에 손 얹어 자신에게 묻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댓글

천상지략 2018-10-13 00:17:07
예수그리스도의 영영희 사심을 인하여 기뻐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의 나라가 이미 그에게 임하였나이다..아멘 할렐루야..
주께서 한탄하사 인생이 믿음을 설명 하사 이리 말씀하심니다. 인생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저보지 안고서는 확고한 믿음이 생기질 안음이여...듣고만 민는자가 있고 보기만 하고도 믿는 자가 있으며. 듣고보고 난후에 믿음이 생기는 자도 있고 듣고 보고 만진 후에야 믿음이 생기는 것을 보시고 이후 복음이 전파 되고 난후 구원얻을 후사에 관하여 설명 하시기를 처음 된자보다 나중 된자가 큰자가 만타 하심이 위로가 되기를 바람니다.. 우리가 열두 제자와 같은 사역을 할만큰 은혜를 받지 못하였으나..주께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으면 만저 보지도 못한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사 성령의 은혜를 한없이 부어주사 믿게 하심을 인하여 할렐루야 아멘 하여야 할것임니다. 12제자분들의 사도보다 내믿음이 작다 하지 못할 것을 인하여 주께서 증거 하셨나니 . 후사들은 주를 직접 뵙지도 그분의 음성을 직접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안니 아였으나 믿었 삽나이다. 하리라 하면 주께서 대답하사 네가 내말을 올케들었다 할줄을 내가 믿음으로 증거 받았습니다 주께서 보내신 은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할렐루야 영광 받으소서 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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