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사람이 얼마나 더 귀하냐

[2017년 7월] 사람이 얼마나 더 귀하냐
2017-07-02 12:59:5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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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얼마나 더 귀하냐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 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12:9-13)


불쌍히 여겨 내 몸처럼
주님께서 안식 날 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마도 당시 바리새인 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이 사람을 이용하여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안 고치는지 시험하기 위해 데려온 장애인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예수 잡는 덫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 하려는 이런 행태를 주님께서 보시고 “그 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셨습 니다” (막3:5) . 왜 주님은 화를 내셨습니까? 장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 물건 취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난 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나그네 되고 병들고 감옥 갇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마25:40) 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에 장애인을 대하는 그들의 이런 태도를 보시고 노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잘 것 없는 장애인 하나를 대할 때에도 언제나 주님이 그 속에 계신다 생각하며 대하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장애인을 깔보고 내려다보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거꾸로 존중히 여기고 올려다 보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아주 쉽게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이 장애인 어머니가 그 장애인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장애인 어미에게서 자식 장애인은 높고 낮음이나 존중이나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어미의 살덩어리 핏덩어리 같은 한 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것도 그 어미가 그 자식을 대하듯 모든 이웃을 대하라는 말씀 입니다.
장애인 뿐 아니라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들의 무슨 목적 달성의 유익을 위해 물건 취급해서는 아니 됩니다. 존중하며 사랑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말틴 부버 (M. Buber 1878-1965) 라는 유대인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나와 너”로 대하여 야지 “나와 그것”으로 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 때 “너”는 존중 대상의 인격적인 “너”이며 “그것”은 인간 이하의 물건 취급하는 비인격적인 “그것”입니다. “나와 그것”이 삶의 습관이 된 인생은 대결 대치 비방 욕망 매도 댓글 훔쳐보기 부러워 하기가 일상이어서 비극적인 하류 야만 사회를 형성하기 쉽습니다. 대신에 “나와 너”가 삶의 습관이 될 경우 만남 대화 사랑 배려 공감 존중 이해를 바탕으로 위대한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사막 같은 세상을 오아시스로 만들 수있고 또 그 반대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작게는 우리들의 부부의 삶을 중심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장에서 나아가 크게 사회와 민족 전체에 적용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가 그 모범을 보여 사회에 한 희망의 공동체로 우뚝 서기를 원하십니다.


돈보다 더 귀한 사람
오늘 성경 11-12절 말씀에서 주님께서 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반문하시며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고 즉석에서 당장 그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양은 당시 목축 사회에서 오늘의 돈과 같은 가축입니다. 요새 말로 하면 사람이 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을 돈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시고 사람의 죄와 병과 죽음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을 우리가 믿고 삽니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몰라도 이런 주님을 믿고 사니까 우리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사람을 돈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고 또사람을 돈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는 오늘의 자본주의 물질주의 돈 중심의 사회에 정면 도전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도 돈 벌기 위한 도구로, 돈 잘 벌기 위한 100점짜리 성적 위주로 키워서는 아니 됩니다. 자녀를 생긴 대로,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그대로 크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녀들이 커서 살아야 할 세상,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은 완전 돈 세상으로 돌아 버린 세상입니다. 돈에 미쳐버린 세상입 니다. 그런 세상에서 돈에 미쳐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 미쳐 돈이 돌아가는 세상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지나간 그딴 정치인 대통령에 대해 사람들이 왜 지금도 열광합니까? 그것은 단 하나! 노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기 때문입니다. 노대통령이 이미 외치기 전에 사람들을 돈 세상에 지쳐 이렇게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마음속 깊은데서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후 가난과 병고의 세월을 지나며 이 땅에 가난이라는 질병을 없애기 위해 마침 박정희 대통령 식의 산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지나 근대화와 도시화, 그리고 최첨단 기계기술 문명이 판치는 거대 자본주의 일확천금을 꿈꾸고 거기 미치는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형화 급성장은 좋으나 여기에 말려들다 정신 차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없고, 나를 중심한 가정이 없고, 우리 가정을 중심한 이웃이 없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침 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일하는 시간에 신나게 콧노래 부르며 일하고, 또 정한 저녁 시간에 퇴근하고, 부부 자녀 부모 형제 자매간에 같이 한 상에 둘러 앉아 그날 하루를 감사하는 저녁식사를 하고, 그 후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영화도 보고 놀고 즐기고 평화롭게 잠드는 것입 니다. 이런 천진난만한 소박한 꿈들이 다사라지고 매일 노동현장에서 3시간 마다 한 사람씩 죽고, 5시간 마다 한 사람 씩 다쳐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돈 세 상 으 로 돌 아가니 이 어찌 사람 사는 세상입니까. 노무현 대통 령은 다시 지난 날 경제 개발 독재시대를 정리하고 이제는 좀 사람 중심의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열어 가려 하니 사람들 잠재력 속에 쌓이던 불만을 알아주는첫 대통령으로 알아 많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강원도 혁신도시 바로 옆의 교회로 섰습니 다. 우리 교회가 여기 들어오자마자 혁신 도시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혁신도시” 개념도 간단한 논리입니다. 사람이 사람 답게 산다 할 때 서울 중심의 사람만이 아니라 지방 중심의 사람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밤낮 “안보” “안보” 하면서 전쟁 시 가장 취약 지구인 서울 경기 권 개발에만 열 올리고 왜 지방은 내버려두는 것이냐의 생각에서 나온 도시 개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선진국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토가 고루고루 균형 있게 발전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만 기형적인 모양새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 사람도 사람대접하는 세상으로 살기 위해 서울 중심의 국가 기관이라도 지방으로 고루 옮겨보자는 발상입니다.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도 이 노무현의 친구 후배로서 그 정신을 이어 받아 등장하여 신선한 감동을 주고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 중심으로 발전하는 세상이 되는 것은 좋으나 도대체가 꽃이 만발한 대한민국의 봄이 미세 먼지 봄이 되는 게말이 되는 것입니까? 무성히 자라는 여름 이, 그리고 세계제일의 천고마비 한국 가을 하늘이 미세먼지 세상이라는 게 말이될 일입니까? 참으로 재앙 수준입니다.
일자리 없이 미세먼지로 가득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제는 사람이 먼저다.” “이제는 사람이 희망이다” 하면서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찾고 이제는 좀 개발이 늦어도 사람이 쾌적하게 살수 있는 환경을 찾으며 시작하고 있습니 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기 위해 37년 된 광주의 상처를 싸매며, 3년 동안 울고 있는 세월호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안방의 세월호인 살인적 가습기 난리에 사과의 고개를 숙이며, 곳곳의 갑질 교만에 경고를 보내며 을의 인권을 지키는 방향을 잡으며, 나아가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안보체제를 다잡을 뿐만 아니라 남북 대결구도를 극복하는 대화 복원과 함께 북한의 가난과 병을 치료하려는 인도적 지원 등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들의 구호와 방향은 <노동의 새벽>으로 등장한 박노해 시인과 무관 하지 않습니다. “일한 만큼 찾아들고 사람대접 받는/ 그런 일터” 노동 현장에서 도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기 를” 비는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책의 “다시”에서 “희망찬 사람은/그 자신이 희망이다/길찾는 사람은/그 자신이 새길 이다/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 속에 들어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칩니다. 양계장의 닭 같이 돈 낳는 기계 아닌 사람을 찾는 그 몸부림으로 7 년 감옥 독방의 저항한 시인의 그 밑 마음 에는 늘 전태일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위해 구체적 으로 무슨 노동법 근로기준법 같은 것이 라도 있지 않을까 하며 그 법을 찾아 읽고 연구하다가 죄인으로 몰리니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그의 일기장에서 한자로 된 근로기준법 등을 연구하며 내게 한자를 아는 대학생 친구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깨어 있는 대학 생들이 이 말 한 마디를 생각하고는 “배 워서 남 주기 위해” “배워서 갑질 하지 않기 위해” “배워서 세상 살리기 위해” “배 워서 전태일 못 다한 일 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으며 심지어 공단에 위장 취업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람 으로 대접하는 세상의 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 고, 사람이 먼저인, 사람이 희망인 세상을 원하는 것은 좋으나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합니 다. 역시 이 사람들이 아담과 가인의 후예 로서 에덴동산 밖에 방황하며 함부로 아벨 같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인적 무기를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성경의 주님은 한 손 마른 사람이 치료 받은 이후에 그 손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을 하거나 알콜 마약 게임 등 온갖 중독 증세로 망해가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주님 당시에 정상급의 잘난 니고 데모라는 사람을 보고 거기서 머물지 말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며 믿는 자에게 영생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 거듭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믿어 영생 얻은 하나님의 자녀인 새 사람으로 살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진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한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십니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 가에 피 흘려 죽이시기까지 하시며 사람의 모든 허물과 죄를 덮으시고 영원히 영생하도록 사람을 이끄셨습니다. 이 사람 에게 영생 양식인 말씀을 주시고 영생의 영인 성령을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며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를 대망하며 오늘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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